AM 02:42 시작
어제 글 쓰고 오전 열한 시쯤에 잠들어서 오후 일곱 시에 깼다.
기분이 그닥 좋지 않았다. 내 감정을 제 3자의 시선에서 객관화하여 바라보는 건 어렵다.
이미 줬을 때부터 내 손을 떠난 거였고, 얼마 되지도 않는 선물이었지만 주변에 가까운 곳이 없어 내년쯤 먹겠다는 말이 왜 이렇게 서운하게 들렸는지.
좋은 마음으로 준 선물인데 오히려 내 마음에 콕 박혀 거슬리는 돌부리가 되었다.
설상가상으로 엄마가 쉬는 날이라 집에 있었고, 부모님은 내가 일어날 때쯤 잠들 준비를 하고 계셨다.
그래서 집안이 온통 어두컴컴했다. 몸을 일으켜야 하는데 침대 아래에서 누가 날 잡고 놔주지 않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래도 일어나야지, 뭐라도 생산적인 일을 하자 싶어 일어나 기분 전환할 겸 마라탕을 시켰다.
다이어트 시작 이후 두 달만에 먹는 마라탕이다. 잔뜩 기대한 채로 이것저것 옵션을 추가한 마라탕이 도착했다.
그런데 이게 웬걸. 반도 먹지 않았는데 배가 부른 거다. 젠장할, 나 아직 더 먹을 수 있다고. 예전엔 다는 아니어도 어느 정도는 먹었잖아.
다이어트를 시작한 뒤부터 먹는 양이 절반 이상 줄어든 느낌이다. 물론 살은 덜 먹는 만큼 빠지니까 좋긴 한데, 그래도 가끔 이렇게 억울한 상황이 생긴다. 특히 이렇게 오늘처럼 기분 전환하려고 배달한 음식이 잔뜩 남으면, 뭐랄까...... 그래. 기분이 나쁜 것도 아니고 더럽다.
돈 아까워. 왜 이렇게 욕심을 냈지? 다 먹지도 못할 거면서.
처음엔 먹음직스러워 보였던 음식들이 이제는 쳐다보기도 싫다. 그래도 돈이 아까워 꾸역꾸역 몇 입 더 먹어 본다.
먹기 싫어.
더 안 들어가.
억울하고 화가 나서 괜히 남은 음식들과 눈싸움을 한다.
깨끗이 비워지지 않은 배달 용기가 마치 뭘 넣어도 공허한 내 마음 같다.
기분 나빠.
요새 틈만 나면 이것저것 공부하고 머릿속에 뭐라도 채워 넣는데, 공부한 내용 중에 문득 생각나는 게 있다.
어떤 일이 생겼을 때 기분이 나쁜 건 내가 그 일을 기분 나쁘다고 정의하기 때문이라고.
그러니까, 애초에 기분 나쁠 만한 일이 아니라고 생각하면 된다는 거다.
사람의 마음은 영사기 같아서, 마음 속에 있는 감정들이 그대로 현실이 되어 돌아 온다고 한다.
그래서 일부러 나쁜 생각 안 하고, 좋은 생각 하면서 지내려고 하는데 하루 걸러 하루 이 모양이다.
비우는 게 어렵다. 나는 부처가 아닌걸. 어떻게 매일매일 좋은 생각만 하고 살아.
그래도 말이야, 그래도... 그래도 어쩌겠어. 이게 나인데.
그러고 보니 오늘이 10 월의 마지막 날이다.
시간이 너무 빠르다. 난 아직 여기 멈춰 있는 것 같은데.
그런데 생각해 보면 아예 멈춘 건 아니다. 느리더라도 계속 가고 있잖아.
어제 글 쓴 것만 해도 그래. 분명히 변한 것들이 많아.
아까 일도 말이야, 어떤 식으로든 호의를 내 입맛대로 돌려받으려고 하면 안 돼. 어차피 이제 내 손에서 떠난 거잖아.
어떻게든 시험 잘 보라는 마음은, 걱정하고 있다는 마음은 전해졌을 거니까 됐다.
이렇게 생각하니 심호흡을 한 것처럼 마음이 조금은 가볍다.
감정을 적어 내려 가면서 이리저리 어지럽게 흩어져 있던 생각들이 제자리를 되찾는다.
어느 순간부터 사람을 알아 가는 것이 어려운 수학 문제를 푸는 것 같다.
새로운 사람을 만나고, 그 사람에 대해 알아 가는 일은 즐겁다.
즐겁고, 신나는 일일 텐데 요새는 잘 나가다가도 전처럼 매끄럽지가 않다.
자꾸 무언가에 걸려 삐끗하고, 전 같았으면 깊은 생각 하지 않고 했을 일을 그 자리에 서서 한참을 생각한다.
-이렇게 하는 게 맞아? 이게 최선이야? 이게 나와 상대 모두에게 좋은 거야?
말을 걸지 않으면 끊임없이 머리 위에 점 세 개 달린 말풍선을 띄워 놓는 게임 속 NPC가 된 느낌이다.
한 살 한 살 먹어 갈수록 개인과 개인과의 간격이 점점 더 멀어지는 것 같다.
감정에 솔직하던 주변 사람들과 나는 이제 점점 더 재고 따지며 확실하지 않은 것에 뛰어들지 않으려 한다.
여긴 내 세계, 여긴 당신 세계. 침범하지 않을게.
그래도 가끔은 손 내밀어도 될까? 이 정도 선은 넘어도 되는 거야?
부담스럽지 않지? 나 잘하고 있는 거야?
싫어하지 않을 거야?
왜 이렇게 됐지? 그래도 감정에 솔직한 게 내 장점이라고 생각했는데.
이건 마음이 조금, 아니 많이 아픈 것 같다.
이게 내가 빛을 잃어 가는 과정이면 어쩌지.
항상 주변 사람들은 내가 밝게 빛나는 별 같다고 했는데.
어디로 튈지 모르는 게 내 매력이라고 했는데.
상처 받지 않으려고, 상처 주지 않으려고 조심하다 보니 내 빛과 색을 잃어 가는 느낌이야.
아, 이 부분에서는 살짝 울 것도 같다.
우느라 한참 동안 혼자 사라졌다 나타났다 반복하는 커서만 바라본다.
나 어떡하지. 이러다 노잼 인간 되겠어.
내가 가장 두려워하는 말들이다. 무매력, 재미없는 인간.
재미없고 매력 없는 인간이 되기는 몸서리치게 싫다. 죽어도 싫다.
존재감 없는 존재가 되느니 차라리 죽는 게 낫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당장 답이 나오지 않을 것 같다. 계속 생각해 보면서 나만의 답을 찾아야겠다.
사람 좀 덜 좋아하고 싶다. 정이 너무 많으니 이 모양이다.
근데 그게 잘 안 돼. 난 애초에 그런 사람인걸. 다른 사람들과 소통하는 게 즐겁고, 대화하는 게 즐겁고, 함께하는 게 좋아.
그리고 그게 잘못됐다고 생각하지도 않아. 근데 살다 보니까 내가 잘못된 것만 같은 거다.
뭐 하는데. 나 지금 나 스스로 가스라이팅 하고 있냐? 미치겠다, 진짜.
잘못된 거 아니잖아. 나는 그냥 이런 사람인걸.
나랑 맞는 사람과 잘 지내면 되는 거지. 굳이 모든 사람에게 사랑받을 필요도, 모든 사람과 어울리려고 할 필요도 없는 거다.
다 알고 있었으면서 바보 같다.
더 미치겠는 건, 방금 내 자신이 좀 귀엽다고 생각했다는 거다. 진짜 어이가 없다.
방금까지 타자 치다가 눈물 났던 사람이 지금은 웃고 있다. 잠깐만, 거기 보고 있는 당신... 나 조울증 그런 거 아니야. 진짜라고.
글을 적다 보면 무의식에 있던 생각들이 갑자기 튀어 나와서 당황할 때가 많다.
그런데 결국 그 튀어 나온 생각들을 적고, 정리하다 보면 나는 어느새 욕조에서 유레카를 외치는 아르키메데스가 되어 있는 거다.
방금도 그런 원리.
어찌 됐든 분명히 서록하는 것의 순기능이다.
오늘 글은 어제보다 정신없는 느낌이네.
그래도 훗날 다시 보면 제일 재미있는 페이지일 것 같아.
시간이 벌써 이렇게 됐네. 잠은 안 오지만 슬슬 잘 준비 하러 가야겠다.
내일은 오늘보다 분명 더 즐겁고 기쁜 일이 가득할 것 같다.
마치며 하고 싶은 말은... 나 자신아, 너 잘하고 있어. 넌 최고야. 너 매력적이야.
오늘도 사랑해.
오늘은 여기까지.
또 봐,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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