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

2024-12-23

너의 선율 2024. 12. 23. 01:39




 
 
 

AM 12:39 시작

 
 
 
 

 

 
 
 
 
 
요즘 자주 듣는 플레이리스트로 글을 시작한다.
나는 바다다. 바다에는 하루에도 몇 번씩 무언가가 밀려 들어오고, 또 그만큼 빠져나간다.
나는 바다다. 누군가를 깊게 품어 줄 수도 있고, 내 품을 떠나갈 때면 반사된 빛을 반짝이며 철썩거리는 소리로 안녕을 전하는 바다.
 
 
 
쓸쓸한 밤이다. 고요하지만 아주 적막하지는 않고, 얘기 나눌 사람은 있지만 마음이 허한 그런 밤.
다들 각자만의 이유와 상황으로 바쁜 하루를 보낸다.
나는 항상 묻고 싶다. 거기에 내 자리 있어? 있다면 크기는 얼마만해? 그 자리 더 넓히고 싶은데 그래도 될까.
하지만 그 물음은 차마 입 밖으로 나오지 못하고 내 안으로 잠식되어 원을 그린다.
 
 
 
부담 주기 싫어.
내가 당신들을 좋아하는 만큼, 아니, 사실은 그것보다 훨씬 더 몇 배로 사랑받고 싶지만 미움 받기는 더더욱 싫어.
미워하지 마. 내가 가끔 어린 아이 같고 감당 안 되듯 굴어도 용서해 줘. 포용해 줘.
아니, 그러지 마. 나에게 기대하게 하지 마. 자꾸만 당신에게 기대하게 하지 마. 실망하게 하지 마. 당신을 미워하게 하지 마.
그런데 그럼에도 나는 당신이 좋아. 내 멋대로 기대했다가, 실망했다가 제멋대로지만, 당신이 날 찾을 때면 또 다시 활짝 웃으며 당신을 반길 나야.
좋아한다고 해 줘. 내가 반짝거린다고 해 줘. 가끔 빛을 잃어도 그 자체로도 예쁘다고 말해 줘.
 
 
 
눅눅하다. 눅눅하고 습한 감정이 내 발목을 잡고 놔 주지 않는다.
침식한다. 자꾸만 아래로 가라앉는다.
만남과 이별은 항시 순회하고, 어제의 헤어짐으로 인한 모든 것들이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형체를 잃고 흐릿해진다.
오늘 너와 함께 들어갔던 필드보스 톡방에서 네 이름을 봤다. 카게 후 몇 채널. 무미건조하고 별거 아닌 한마디였지만 네 닉네임이 걸려 있다는 이유만으로 한참 동안 닫기 버튼을 누를 수가 없다. 마음 한구석이 계속, 계속 따끔거린다.
이제 너는 내 존재 자체를 잊어버린 사람처럼 내가 없던 일상으로 되돌아가 평화롭다. 네 바다는 이제 잠잠하겠지. 파도가 치지 않고 잔물결만 일렁이겠지. 그게 네가 원하던 현재니까. 내가 없이, 감정 소모할 필요 없이 편안하고 짜여져서 예측 가능한 일상. 그게 네가 원한 거였으니까.
 
 
 
내가 원하는 걸 우선시하는 게 아니라, 상대가 원하는 걸 먼저 생각하고 배려하는 게 사랑이라 생각해서 멋지게 보내 줄 심산이었다. 그런데 마지막 통화라고 생각하니까, 이 전화가 끊기면 내가 그렇게 좋아하는 네 목소리를 한참 동안, 어쩌면 영영 듣지 못할 거라 생각하니까 사고가 제대로 되지 않았어. 그저 보낼 수 없다는 생각만 하게끔, 가지 말라는 말만 내뱉도록 프로그래밍된 로봇처럼 울먹거리며 되물을 수밖에 없었어. 안 가면 안 돼? 가지 마. 내가 잘못했어. 가지 마. 나와 비슷한 이유로 통화를 끊기 힘들다고 했지만, 그럼에도 가야 한다며 먼저 끊는다고 했던 너는 내 울음 섞인 물음을 듣고 잠시 동안 침묵했다. 그러다가 다시 말했다. 그래도 가야 해. 가끔 내 생각이 나면 글 써 줘. 나도 가끔 찾아갈게. 끊을게, 누나. 그 후 몇 초 뒤 차가운 통화 종료음과 함께 우리 둘의 대화는 끝이 났다.
 
 
 
나는 평화롭던 네 일상에 갑자기 찾아온,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 나오는 토끼 같은 존재였을까. 호기심에 손을 뻗어 토끼가 따라오라는 대로 발걸음했지만, 그 길은 예측 불가능한 것들 투성이었을 거야. 이건 이래서 뭐지 싶고, 저건 저래서 널 놀래켰을 거고, 심지어 마음에 들었던 토끼마저 중간 중간 네가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을 하기도 했잖아. 그런데 사랑이란 원래 그렇게 예측 불가능한 것들에서 시작하는 거 아니겠니. 그래도 재미있었지? 가슴 아파했던 날보다 나로 인해 웃었던 날들이 더 많았을 거잖아. 난 그렇게 생각해. 그냥, 그런 확신이 있어.
우리, 짧은 시간이었지만 진심으로 서로를 참 많이 사랑했잖아.
 
 
 
나는 이제 널 미워하지 않아. 네가 오늘 하루는 어떻게 보냈을지 궁금하고, 얼마나 행복했을지 그런 소소한 물음꽃이 마음 속에 자그맣게 피어나. 나 없이 불행했으면 하는 마음보다 네가 아프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이 더 크고, 그저 네가 평화로웠으면 해. 나는 이제 내 사랑으로 너를 놓아 줄 거야. 언젠가 다시 만났을 때 진정으로 서로를 보며 활짝 웃을 수 있는 날이 올 때까지 너의 행복을 빌 거야. 잘 가. 잘 가, 강아지야. 솔직한 게 참 귀엽고 사랑스러웠던 내 강아지. 정신 없이 너에게 빠질 수밖에 없게 만들었던 내 강아지야. 잘 가. 이제는 우리 집 정원만이 아니라, 대문을 나가 넓은 들판에서 자유롭게 뛰놀아. 네가 하고 싶은 대로 다 하면서 행복해야 해. 어디서든 예쁨 받고, 사랑받으며 살아. 다음에 만났을 때 바깥 세상이 얼마나 아름다웠는지 나한테도 이야기해 줘. 잘 가. 잘 가, 내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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